콘텐츠로 이동

원자는 왜 손을 잡는가

화학물질이라는 말에는 묘하게 어두운 느낌이 있다. 어딘가 인공적이고, 위험하고, 자연에서 멀리 떨어진 무엇처럼 들린다. 그런데 우리가 매일 마시는 물도 화학물질이다. 물 분자는 산소 하나와 수소 둘이 단단히 손을 잡고 있는 작은 화학결합 덩어리다. 소금도 마찬가지다. 결합 자체에는 좋고 나쁨이 없다. 다만 어떻게 손을 잡았느냐에 따라 그 물질이 물에 녹을 수도 있고, 단단해질 수도 있다. 즉, 결합에 따라 성질이 결정되는 것이다.

1강에서 원자가 왜 다른 원자와 반응하려 드는지 질문 하나를 남겼다. 이번에는 그 답을 본다. 원자가 손을 잡는 이유, 그리고 손을 잡는 두 가지 방식이다.

원자는 안정을 찾기 위해 결합한다

섹션 제목: “원자는 안정을 찾기 위해 결합한다”

먼저 이상한 원자들 한 무리를 보자. 헬륨, 네온, 아르곤 같은 기체다. 이들은 좀처럼 다른 것과 반응하지 않는다. 풍선에 넣어도, 전구에 채워도 그저 가만히 있다. 그래서 비활성기체라 부른다. 게으른 게 아니라, 더 바랄 게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원자의 가장 바깥쪽에는 전자가 도는 자리가 있다. 비활성기체는 이 바깥 자리가 꽉 차 있다. 대개 8개로 채워진 상태다. 자리가 다 찼으니 더 얻을 것도, 내줄 것도 없다. 에너지로 따지면 가장 낮고 편안한 상태다. 방을 깔끔하게 정리해 둔 사람이 굳이 무언가를 더 들이거나 버리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문제는 나머지 원자들이다. 이들은 바깥 자리가 어중간하게 차 있다. 그래서 비활성기체의 그 꽉 찬 상태를 흉내 내려 한다. 바깥 전자를 8개로 맞추려는 이 경향을 옥텟이라 부른다. 결합이란 결국 원자가 더 편안한 상태로 가려고 벌이는 일이다. 안정적인 상태가 되기 위해서는 모자란 부분을 채워야 하고, 모자란 부분을 채우기 위해 손을 잡는 것이다.

채우는 방법은 두 가지뿐이다. 전자를 한쪽이 다른 쪽에 아예 넘겨주거나, 두 원자가 전자를 가운데 두고 나눠 갖거나. 앞의 것이 이온결합, 뒤의 것이 공유결합이다. 거의 모든 화학결합은 이 둘 중에 하나다.

이온결합과 공유결합 전자를 넘겨주는 이온결합 — 한쪽이 전자를 떼어 다른 쪽에 건넨다 (이미지: EliseEtc /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공유결합 모식도 전자를 나눠 갖는 공유결합 — 두 원자가 전자쌍을 함께 쓴다 (이미지: Jacek FH /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한 가지만 덧붙인다. 옥텟은 법칙이 아니라 경향이다. 수소처럼 2개로 만족하는 원자도 있고, 8개 이상이 돼야 만족하는 원자도 적지 않다. 그러니 “반드시 8개”가 아니라 “대체로 꽉 찬 쪽으로 간다”고 기억해 두면 된다.

첫 번째 길은 전자를 빌려주는 쪽이다. 정확히는 한 원자가 전자를 아예 떼어 다른 원자에게 넘긴다. 소금이 대표적이다.

소금은 나트륨과 염소로 이루어진다. 나트륨은 바깥 전자 하나가 남아 거치적거리고, 염소는 하나가 모자라 아쉽다. 그래서 나트륨이 그 전자 하나를 염소에게 넘긴다. 전자를 잃은 나트륨은 양전기를 띠고, 얻은 염소는 음전기를 띤다. 이제 둘은 서로 반대 전기를 가진 사이가 된다. 반대 전기는 끌어당긴다. 이 끌어당기는 힘으로 묶이는 것이 이온결합이다.

이렇게 묶인 나트륨과 염소는 하나씩 짝을 이뤄 차곡차곡 쌓인다. 양전기와 음전기가 격자처럼 번갈아 자리 잡은 단단한 구조다. 소금 알갱이가 야물고 잘 부서지지 않으며 녹이려면 꽤 높은 열이 드는 까닭이 여기 있다.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 사방으로 단단히 얽혀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길은 전자를 나눠 갖는 쪽이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넘기는 대신, 두 원자가 전자쌍을 가운데 두고 함께 쓴다. 물이 대표적이다.

물은 산소 하나에 수소 둘이 붙은 모양이다. 산소는 두 수소와 각각 전자 한 쌍씩을 나눠 가지면서 모두가 바깥 자리를 채운다. 이렇게 전자를 공유해 묶이는 것이 공유결합이다. 그런데 나눠 갖는다고 해서 늘 공평한 것은 아니다. 산소는 수소보다 전자를 당기는 힘이 세다. 그래서 공유한 전자가 산소 쪽으로 살짝 쏠린다. 전자가 몰린 산소 쪽은 약한 음전기를, 전자가 빠진 수소 쪽은 약한 양전기를 띤다. 한 분자 안에서 전기가 한쪽으로 치우치는 이런 분자를 극성 분자라 한다. 물이 바로 그렇다.

그래서 소금은 단단한 알갱이로, 물은 흐르는 액체로 우리 앞에 놓인다. 묶는 방식이 다르면 물질의 성질도 이렇게 달라진다.

결합 방식은 한 가지 중요한 차이를 만들게 되는데, 그 물질이 물에 녹느냐 기름에 녹느냐다.

오래된 경험칙이 하나 있다. 비슷한 것끼리 녹는다는 것이다. 물은 극성 분자이므로, 전기가 치우친 다른 극성 물질이나 전기를 띤 이온성 물질을 잘 끌어안는다. 소금이 물에 잘 녹는 이유다. 물 분자들이 나트륨과 염소를 에워싸 격자에서 떼어 내 흩어 놓는다. 반대로 소금은 기름에는 녹지 않는다. 기름은 전기가 치우치지 않은 비극성 물질이라 소금과 끌릴 구석이 없다. 비슷한 것끼리만 서로를 받아들이는 셈이다.

이 단순한 원리가 화장품 한 통의 성분 구성을 결정한다. 어떤 성분이 물에 녹는 성질이면 물을 바탕으로 한 부분에, 기름에 녹는 성질이면 기름을 바탕으로 한 부분에 들어간다. 같은 효과를 노리는 성분이라도 녹는 성질이 다르면 들어가는 자리가 달라진다.

비타민C가 그런 경우다. 비타민C는 본래 물에 녹는 성질이라 물이 거의 없는 오일 제형에는 그대로 쓰기 어렵다. 그래서 처방에 따라 물에 잘 녹도록 형태를 바꾼 유도체를 쓰기도 하고, 반대로 기름에 녹는 형태로 바꿔 오일을 바탕으로 한 제형에 넣기도 한다. 나이아신아마이드처럼 물에 녹는 성분은 자연히 수분이 많은 토너나 에센스 쪽에 자리 잡는다. 성분표에서 어떤 성분이 어디쯤 어떤 이웃과 함께 있는지를 보면, 그것이 물 쪽 식구인지 기름 쪽 식구인지 어림할 수 있다.

물성과 결합을 둘러싼 마케팅에는 가려 들어야할 대목도 있다. 이를테면 물을 특별하게 이온화했다는 식의 설명이다. 소금을 물에 녹이면 나트륨과 염소는 이미 따로 흩어진 이온 상태가 된다. 특별한 처리로 비로소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다. 수소결합이라는 말을 신비롭게 내세우는 경우도 있는데, 수소결합은 물 분자들 사이에서 흔히 일어나는 약한 끌림일 뿐 특정 제품만의 비밀이 아니다. 이런 표현이 보이면, 결합이 무슨 마법을 부린다기보다 이미 알려진 성질에 그럴듯한 이름을 붙인 것은 아닌지 한 번 의심해 볼 만하다.

이번 강에서 물은 공유결합의 예시로 잠깐 등장했다. 그러나 물은 화장품에서 거의 언제나 첫 줄을 차지하는 주인공이다. 0강에서 남겨 둔 질문, 물은 왜 늘 맨 앞에 오는가에 대한 답이 여기서 시작된다.

비밀은 방금 본 극성에 있다. 전기가 한쪽으로 치우친 물 분자는 다른 물질을 끌어안아 녹이는 데 유난히 능하다. 다음 강에서는 이 작은 분자가 어떻게 그토록 많은 것을 녹이는지, 그리고 어째서 기름만은 끝내 받아들이지 못하는지를 본다. 결합이 성질을 정한다는 이번 강의 줄기는, 물이라는 한 분자 안에서 다시 펼쳐진다. 그리고 결합이 단단함을 정한다는 또 다른 줄기는, 나중에 분이나 가루로 들어가는 무기물 성분을 다룰 때 다시 끌어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