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의 구조와 장벽 — 성분은 어디까지 들어가나
비싼 세럼을 정성껏 발라도, 그 안의 성분 대부분은 피부 표면에서 멈춘다. 진피까지 닿는 성분은 손에 꼽을 만큼 적다. 광고가 ‘깊숙이 침투’를 말할 때, 그 ‘깊이’가 실제로 어디인지 따져 물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지금까지 이 강의는 분자 하나하나의 정체를 쫓아왔다. 물과 기름, 지방산, 알코올, 단백질, 효소. 그런데 그 모든 성분이 결국 던지는 질문은 하나로 모인다. 피부에 발렸을 때 어디까지 들어가는가. 그 답을 가진 무대가 피부, 더 정확히는 피부의 가장 바깥 껍질이다. 16강에서 잠깐 짚어둔 그 ‘벽돌담’의 정체를 이제 펼친다.
피부는 한 겹이 아니다
섹션 제목: “피부는 한 겹이 아니다”피부를 종이 한 장처럼 떠올리기 쉽지만, 실제로는 여러 층이 포개진 구조다. 바깥부터 표피, 진피, 피하지방의 세 층으로 나뉜다. 우리가 화장품을 바르고, 흡수를 따지고, 장벽을 말할 때 무대가 되는 곳은 거의 전부 맨 바깥의 표피다.
표피도 한 겹이 아니다. 안쪽 깊은 곳부터 기저층, 유극층, 과립층, 그리고 맨 바깥의 각질층까지 네다섯 층이 쌓여 있다(손바닥·발바닥처럼 두꺼운 피부에는 그 사이에 투명층이 하나 더 있다). 이 층들은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한 흐름 위에 있다. 가장 안쪽 기저층에서 세포가 끊임없이 새로 태어나 위로 밀려 올라가고, 올라가는 동안 모양과 성질을 바꾸다가, 맨 위에 이르면 핵을 버린 납작한 죽은 세포가 되어 떨어져 나간다. 16강에서 “각질층은 죽은 세포가 벽돌처럼 쌓인 층”이라고 했던 그 벽돌이, 바로 이 여정의 종착점에서 만들어진다.
피부 단면 — 위에서부터 표피(각질층-과립층-유극층-기저층)·진피·피하지방. 기저층에서 태어난 세포가 위로 밀려 올라가 각질층에서 탈락하는 흐름 (이미지: OpenStax College, CC BY 3.0)
이 갱신에는 시간이 걸린다. 흔히 “각질은 28일마다 새것으로 바뀐다”고 하지만, 이는 깔끔하게 다듬은 숫자에 가깝다. 실제 측정값은 표피 전체가 한 번 교체되는 데 대략 40일에서 56일, 나이가 들수록 더 느려진다. 갱신이 느려지면 묵은 각질이 두껍게 쌓이고, 그 빈자리를 메우려는 것이 각질 케어 제품이 내세우는 논리다. 다만 숫자 자체는 측정 방법과 부위, 나이에 따라 출렁이므로 정확한 한 값으로 박아 둘 일은 아니다.
진피는 그 아래에서 콜라겐과 엘라스틴으로 짜인 결합조직 층이다. 피부의 탄력과 두께를 떠받치는 곳이지만, 바르는 화장품 성분이 여기까지 닿는 경우는 거의 없다. 흡수의 첫 관문이자 사실상 마지막 관문은 그보다 한참 위, 표피의 맨 바깥에 있다.
벽돌과 시멘트로 쌓은 벽
섹션 제목: “벽돌과 시멘트로 쌓은 벽”각질층은 표피 맨 바깥의 얇은 층이다. 두께는 대략 20μm 안팎, 머리카락 굵기의 몇 분의 일밖에 안 된다. 그런데 이 얇은 층이 피부의 거의 모든 방어를 떠맡는다. 외부 물질이 함부로 못 들어오게 막고, 안쪽의 물이 함부로 못 빠져나가게 가둔다.
구조를 그림으로 옮기면 벽돌담과 똑같다. 납작하게 죽은 각질세포가 벽돌이고, 그 벽돌 사이를 메운 지질, 곧 기름 성분이 시멘트다. 피부과학에서 이를 벽돌-시멘트 모델이라 부른다. 비유라기보다 학계가 공유하는 표준 그림에 가깝다. 각질층은 대략 열다섯 겹의 벽돌이 시멘트에 단단히 박혀 쌓인 벽인 셈이다.
벽돌-시멘트 모델 — 납작한 벽돌(각질세포, “죽은 세포”)이 가로로 쌓이고 그 사이를 시멘트(세포간지질)가 메운 단면. 시멘트 칸에 “세라마이드+콜레스테롤+지방산” 표시
여기서 시멘트가 주인공이다. 벽돌만 쌓아 올린 담을 떠올려 보면 안다. 벽돌이 아무리 튼튼해도 사이가 비어 있으면 물은 그 틈으로 줄줄 샌다. 방수를 결정하는 것은 벽돌이 아니라 틈을 메운 시멘트다. 피부도 똑같아서, 물이 새고 외부 물질이 드나드는 통로는 죽은 세포 자체가 아니라 세포와 세포 사이다. 이 시멘트가 부실하면 장벽은 곧장 약해진다.
장벽이 얼마나 새는지는 숫자로 잴 수 있다. 피부 안쪽의 물이 표피를 통해 증발해 빠져나가는 양을 경피수분손실(TEWL)이라 부르는데, 장벽이 온전하면 낮고 손상되면 높아진다. 팔 안쪽 정상 피부에서 대략 시간당 면적당 7 안팎으로 잡히지만, 이 역시 부위와 환경에 크게 좌우되는 대략의 눈금이다. ‘장벽 강화’를 내세우는 제품이 노리는 일은 단순하다. 새는 시멘트를 보충해 이 수분 손실을 낮추는 것이다.
그래서 각질을 무작정 벗겨내는 일은 위험하다. 각질은 단순한 ‘때’가 아니라 살아 있는 방수 외벽이다. 과한 각질 제거는 벽돌을 긁어내 시멘트의 틈을 벌리는 일이고, 그 결과는 더 잘 새는 피부다.
시멘트의 정체와 출입문의 폭
섹션 제목: “시멘트의 정체와 출입문의 폭”그렇다면 그 시멘트는 무엇으로 되어 있을까. 세 가지 기름 성분이 주축이다. 세라마이드, 콜레스테롤, 그리고 자유 지방산. 8강에서 성냥 모양으로 그려본 그 지방산이 여기서 다시 등장한다. 머리 하나에 긴 꼬리가 달린 그 분자가, 피부 장벽 시멘트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16강에서 화장품 성분이 결국 몸을 이루는 분자를 닮았다고 했던 말이 여기서 구체화된다.
세 성분의 비율은 대략 세라마이드가 절반, 콜레스테롤이 사분의 일, 자유 지방산이 나머지쯤이다. 분자 개수로 따지면 셋이 엇비슷하게 1 대 1 대 1에 가깝다. 비율을 굳이 따지는 이유가 있다. 세 지질이 적정한 비율로 맞물릴 때라야 시멘트가 빽빽하게 정렬돼 제대로 물을 막는다. 노화나 아토피 피부에서 세라마이드가 줄어 장벽이 헐거워지는 것이 그 반증이다. 세라마이드 함유 제품은 바로 이 부족한 시멘트를 채우려는 시도다.
다만 한 가지는 짚고 가야 한다. 화장품에 쓰는 세라마이드는 사람의 세라마이드를 그대로 옮겨 담은 것이 아니라, 대개 합성하거나 비슷하게 흉내 낸 유사 성분이다. 기능을 닮긴 했어도 구조가 똑같지는 않다. 그러니 “바른 세라마이드가 내 피부 세라마이드로 그대로 채워진다”기보다 “장벽을 거드는 보조재”라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벽돌 안쪽에는 또 다른 보습 장치가 들어 있다. 각질세포 속에 든 천연보습인자(NMF)다. 아미노산을 비롯한 수용성 물질의 묶음으로, 낮은 습도에서도 세포 안에 물을 붙잡아 둔다. 벽돌 속에 박힌 작은 물주머니인 셈이다. 이 NMF의 상당 부분은 필라그린이라는 단백질이 잘게 분해되며 생긴 산물이다. 필라그린을 만드는 유전자에 문제가 생기면 NMF가 줄어 피부가 심하게 건조해지고 아토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간다. 성분은 어디까지 들어가나. 이 빽빽한 벽을 통과하려면 분자가 충분히 작아야 한다. 대략 분자량 500 이하라야 정상 각질층을 넘을 수 있다는 경험칙이 있다. 흔히 ‘500 달톤 룰’이라 부른다. 출입문에 폭 제한이 걸린 셈이라, 덩치 큰 분자는 들어오지 못하고 표면에서 멈춘다. 콜라겐이나 고분자 히알루론산은 분자량이 수만에서 수십만에 이르러 이 문을 통과할 수 없다. 발라서 진피를 채운다는 말이 성립하기 어려운 이유다.
단, 이 500이라는 숫자를 절대선처럼 다루면 곤란하다. 이것은 물리 법칙이 아니라 ‘큰 분자는 잘 안 들어간다’는 흡수의 직관적 지침일 뿐이다. 실제로는 그보다 큰 분자가 특정 조건에서 통과한 사례도 있다. “정확히 500을 넘으면 못 들어간다”는 정량 잣대가 아니라, 분자 크기가 흡수를 크게 좌우한다는 방향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맞다.
다음 강 예고
섹션 제목: “다음 강 예고”이번 강에서 우리는 무대를 설치했다. 벽돌과 시멘트로 쌓인 벽, 그 사이로 물이 새는 자리, 그것을 재는 눈금까지. 정작 그 새는 자리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 하는 본론은 아직 열지 않았다.
그 답이 21강 ‘보습’이다. 장벽이 새는 곳을 막는다는 것이 보습의 정체이고, 오늘 만난 NMF와 세라마이드, 경피수분손실이라는 눈금이 그 편의 토대가 된다. 물을 끌어오고, 틈을 메우고, 위를 덮는 세 가지 방식으로 새는 벽을 다스리는 이야기는 그때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