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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물이란 무엇인가

유기 성분은 잘 변한다. 오일은 시간이 지나면 산패해 냄새가 달라지고, 천연 색소는 빛을 받으면 빛이 바랜다. 2부에서 다룬 탄소 골격의 분자들은 대체로 그런 운명을 안고 산다. 그런데 선크림을 짜면 나오는 하얀 가루, 파운데이션이 내는 발색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몇 달이 지나도 색이 그대로다. 같은 화장품 한 통 안에서, 어떤 성분은 쉽게 변하고 어떤 성분은 끈질기게 버틴다. 그 차이는 어디서 오는가.

6강에서 선을 하나 그었다. 탄소 골격을 가진 것이 유기물, 그렇지 않은 나머지가 무기물이라는 선이다. 2부 내내 그 선의 한쪽, 곧 탄소 사슬로 이루어진 성분들만 들여다봤다. 이제 선 반대편으로 넘어갈 차례다. 산화아연, 이산화티탄, 마이카, 산화철, 탈크. 이름은 제각각이지만 공통점이 있다. 모두 탄소 골격이 없는, 말하자면 곱게 빻은 돌가루다. 3부는 이 무기 성분들의 세계다.

먼저 정의부터 짚되, 이 정의에 너무 기대지는 말자. 무기물은 대략 “탄소를 주된 골격으로 삼지 않는 물질”을 가리킨다. 금속, 광물, 산화물, 염, 그리고 물 같은 것들이다. 6강의 작업 정의를 그대로 뒤집은 셈이다. 탄소-수소나 탄소-탄소 결합을 품으면 유기, 나머지가 무기.

그런데 6강에서 이미 못 박았듯, 이 경계는 칼이 아니라 관례다. 탄소가 들었는데도 관례상 무기로 치는 것들이 있다. 이산화탄소가 그렇고, 조개껍데기와 대리석을 이루는 탄산염이 그렇다. 무기화학 교재들은 한발 더 나아가 유기와 무기의 구분 자체가 흐려졌다고 말한다. 금속이 탄소에 직접 붙은 화합물처럼 어느 쪽으로도 깔끔하게 가를 수 없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12강은 정의를 붙들고 씨름하지 않는다. 대신 다른 길을 택한다. “탄소가 들었느냐”보다 더 쓸모 있는 물음은 “어떤 모습으로 뭉쳐 있느냐”다. 유기 성분은 대체로 작은 분자 덩어리들이 느슨하게 모여 있는 반면, 무기 광물은 결정이라는 단단한 격자로 존재한다. 정의로 따지면 흐릿한 경계가, 성질로 보면 또렷해진다. 그러니 무기 편의 문은 정의가 아니라 성질로 연다. 말랑하고 잘 변하는 쪽과 단단하고 잘 안 변하는 쪽, 그 대비로.

금속, 광물, 산화물은 어떻게 다른가

섹션 제목: “금속, 광물, 산화물은 어떻게 다른가”

무기 성분을 이야기할 때 세 단어가 자주 겹쳐 나온다. 금속, 광물, 산화물. 비슷해 보이지만 가리키는 바가 다르다.

금속은 철, 알루미늄, 티타늄, 아연 같은 금속 원소, 또는 그 원소만으로 이루어진 덩어리다. 광물은 자연에서 만들어진 무기질 고체 가운데, 일정한 화학 조성과 규칙적인 결정 구조를 갖춘 것을 말한다. 석영이나 적철석이 그 예다. 산화물은 산소가 다른 원소와 결합한 화합물이고, 화장품에 쓰이는 무기 성분의 상당수가 여기에 속한다.

산화아연을 세 각도에서 본 그림 같은 ZnO를 금속(아연)·산화물(산화아연)·광물(천연 진크석)의 세 범주로 겹쳐 본 모습.

이 세 단어가 헷갈리는 까닭은, 한 성분이 동시에 여러 범주에 걸치기 때문이다. 산화아연을 보자. 금속인 아연을 산소가 붙들어 만든 산화물이고, 자연에서는 진크석이라는 광물로도 나온다. 같은 물질을 어느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금속의 산화물이라 부를 수도, 광물이라 부를 수도 있다. 이산화티탄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짚고 갈 것이 하나 있다. 화장품은 이런 성분을 흔히 “미네랄”, 곧 광물성이라 부른다. 그런데 광물의 엄밀한 정의는 자연에서 생겨났을 것을 요구한다. 화장품에 쓰이는 산화아연과 이산화티탄은 대부분 공장에서 합성한 분말이다. 광물과 조성은 똑같지만, 땅에서 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미네랄”이라는 이름이 곧 천연을 보증하지는 않는다.

복잡해 보여도 화장품 속 무기 성분은 크게 세 묶음으로 정리된다. 금속에 산소가 붙은 금속 산화물, 규소와 산소가 짜인 규산염, 그리고 이산화규소다. 산화아연·이산화티탄·산화철이 첫째 묶음이고, 마이카와 탈크가 둘째, 실리카가 셋째다.

이제 처음의 물음으로 돌아가자. 무기 성분은 왜 잘 안 변하는가. 답은 2강에서 배운 결합에 있다.

유기 성분을 떠올려 보자. 6강의 비유를 빌리면, 탄소로 만든 레고 사슬이다. 분자 하나하나는 꽤 튼튼하지만, 그 분자 덩어리들끼리는 약한 힘으로 느슨하게 뭉쳐 있다. 그래서 열을 조금만 줘도 덩어리들이 흩어지고, 빛이나 산소를 만나면 사슬이 끊기거나 다른 것과 엉겨 붙는다. 잘 녹고 잘 변하는 이유다.

무기 광물은 다르다. 작은 덩어리들이 모인 게 아니라, 결정 전체가 하나로 이어진 거대한 결합 그물이다. 돌담을 떠올리면 된다. 벽돌 한 장을 빼내려 해도 사방이 단단히 맞물려 있어, 벽 전체를 깨지 않고는 어림없다. 무기 결정이 꼭 그렇다. 한 원자를 떼어내려면 그것을 붙들고 있는 주변의 힘을 통째로 이겨야 한다.

이 “통째로 묶인 결합”에는 몇 가지 종류가 있다. 2강에서 만난 결합들이 여기서 다시 등장한다. 이온결합은 양전하와 음전하가 격자 모양으로 깍지를 끼고 서로 끌어당기는 구조다. 자석 더미처럼, 한 알을 떼려면 사방의 인력을 다 거슬러야 한다. 금속결합은 양이온들이 자유전자의 바다에 잠겨 통째로 붙들린 형태다. 그리고 실리카처럼 규소와 산소가 그물처럼 짜인 공유결합도 있다.

이 결합들의 공통점은 끊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기 광물은 녹는점이 대단히 높다. 소금은 약 801℃, 산화아연은 약 1975℃, 이산화티탄은 약 1843℃, 석영은 약 1610℃에서야 녹는다. 수치는 자료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유기 성분이 수십에서 수백 도면 녹거나 분해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결합이 강하고 결정이 통째로 묶여 있으니, 상온의 산이나 빛, 산소 정도로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무기 성분이 잘 안 변하는 까닭이 바로 이것이다.

한 가지 정확히 해 둘 것이 있다. 흔히 “이온결합이라 녹는점이 높다”고 뭉뚱그리지만, 이는 지나친 단순화다. 산화아연이나 이산화티탄은 이온성으로 분류되곤 해도 실제로는 공유 성격이 상당하고, 실리카는 아예 이온결합이 아니라 공유 그물결합이다. 그러니 한 종류의 결합으로 환원하기보다, “결정 전체가 한 덩어리로 묶인 강한 결합”이라고 묶어 두는 편이 옳다. 모두가 단순한 이온결합은 아니다.

”무기라서 단단하다”는 틀렸다

섹션 제목: “”무기라서 단단하다”는 틀렸다”

여기까지만 보면 “무기는 단단하고 안 변한다”는 규칙이 선 듯하다. 그러나 진짜 교훈은 그게 아니다. 반례가 있다.

탈크는 무기 광물이다. 베이비파우더와 파운데이션을 매끄럽게 만드는, 규소와 산소로 이루어진 규산염이다. 그런데 이 탈크는 광물의 단단함을 재는 모스 굳기에서 가장 무른 1등급이다. 손톱은커녕 손가락으로 문질러도 미끄러질 만큼 부드럽다. 무기인데 가장 무르다.

왜 그럴까. 탈크는 결정이 층층이 쌓인 구조다. 한 층 안에서는 원자들이 강하게 묶여 있지만, 층과 층 사이는 약한 힘으로만 붙어 있다. 그래서 층끼리 서로 미끄러진다. 카드 한 벌을 떠올리면 된다. 카드 한 장은 잘 안 찢기지만, 카드들끼리는 손가락으로 쓱 밀어낼 수 있다. 탈크가 미끄러운 것은 바로 이 층 사이의 헐거움 때문이다.

여기서 무기물의 진짜 이치가 드러난다. “무기라서 단단하다”가 아니다. 결합이 어떻게 짜였는지가 성질을 정한다. 산화아연이 단단한 것도, 탈크가 무른 것도, 결국 결합 구조의 차이일 뿐이다. 2강에서 결합의 종류를 배웠다면, 12강은 그 결합이 녹는점과 단단함과 “잘 안 변함”을 어떻게 빚어내는지 보여 주는 응용편인 셈이다.

이 무기 분말들은 화장품 안에서 저마다 다른 일을 한다.

산화아연과 이산화티탄은 자외선을 막는 무기 성분으로 쓰인다. 빛과 산소에 잘 안 변하는 안정성 덕에, 발라 둔 차단 효과가 오래 버틴다. 그런데 이 흰 가루가 대체 어떻게 햇빛을 막는가. 흔히 빛을 튕겨낸다고들 말하는데, 정말 그런지는 다음 13강에서 따져 본다. 여기서는 “무기 차단 성분”이라는 이름표만 붙여 두자.

산화철은 색을 낸다. 빨강, 노랑, 검정 계열의 색소로, 성분표에는 CI 77491·77492·77499 같은 번호로 적힌다. 화학적으로 안정해 좀처럼 변색되지 않는 덕에, 파운데이션의 색이 오래 유지된다. 마이카는 빛을 받아 은은하게 반짝이는 펄과 광택을 낸다. 다만 산화철이 어떻게 색을 내고 마이카가 어떻게 반짝이는지는 색조를 다루는 14강의 몫이다. 실리카는 이산화규소로, 피지를 머금어 화장을 보송하게 만들거나 제형의 점도를 조절한다.

한 가지 오해는 풀어 두자. 무기 성분이 잘 안 변한다는 것과 무기라서 더 안전하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안정성은 화학적으로 잘 반응하지 않는다는 성질일 뿐, 피부에 더 순하다는 보증이 아니다. “미네랄이라 순하다”는 말은 마케팅의 언어이지 화학의 결론이 아니다.

3부 무기화합물 편의 문을 열었다. 정의로 따지면 흐릿하던 경계가, 결합과 성질로 보면 또렷해진다. 무기 광물이 단단하고 안 변하는 것은 그것이 무기여서가 아니라, 결정 전체가 안 끊어지는 결합으로 묶여 있어서다. 그리고 그 결합이 어떻게 짜였느냐에 따라 산화아연처럼 단단할 수도, 탈크처럼 무를 수도 있다.

다음 13강은 이 무기 분말이 실제로 일하는 첫 무대, 선크림이다. 산화아연과 이산화티탄이 자외선을 “튕겨낸다”고들 하는데, 정말 그렇게 단순한 일일까. 흰 가루 한 줌이 햇빛을 다루는 방식은 생각보다 의외다.